“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좋아요”…밤 늦게까지 불 켜진 돌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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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연장돌봄 사업 안내 포스터

어두운 골목길, 한 건물 2층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서툰 손가락이 건반 위를 더듬으며 연주하는 ‘젓가락 행진곡’이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서울 중랑구 면목동 서울지역아동센터의 야간 연장돌봄 시간 풍경이다.

엄마가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올 밤 10시 30분까지, 김미자(12·면목초) 학생은 이곳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공부를 한다.

‘나 홀로 집에’가 아닌, 따뜻한 돌봄 안에서.

◆ 밤 늦게까지 불 켜진 돌봄센터…’야간 연장돌봄’ 본격 시행

2025년 6월과 7월, 부산에서 아파트 화재로 아이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부모가 식당을 운영하거나 새벽 청소일을 나간 사이,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연이은 참변에 정부는 같은 해 9월, 국무총리 주재 현안점검회의를 열고 ‘야간돌봄 공백 해소’를 범부처 대책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로 올해 1월 5일, ‘야간 연장돌봄 사업’이 전국에서 본격 시작됐다.

보건복지부는 통상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운영하던 방과 후 마을돌봄시설의 운영시간을 야간까지 연장했다. 맞벌이·야간근무·경조사 등으로 돌봄 공백이 생기는 가정의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돌보는 공적 서비스다. 아동권리보장원이 17개 시·도지원단과 협력해 운영 지원 및 사업관리를 맡고 있다.

전국 5500여 개 마을돌봄시설(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 가운데 343개소가 참여기관으로 선정됐다.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A형과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B형으로 나뉜다.

전국 대표번호(1522-1318)로 전화하면, 거주지역과 가까운 지역 돌봄시설과 신속하게 연결된다.

평소 시설을 이용하지 않던 가정도 이용 시간 2시간 전까지 신청하면 6세부터 12세까지의 아동을 맡길 수 있다. 형제자매가 함께 이용하는 경우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센터 판단 아래 미취학 아동도 제한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 ‘혼자’가 아닌 ‘함께’…아이들의 저녁을 채우는 시간

2008년 문을 열어 올해로 19년째 지역 아이들 곁을 지켜온 서울지역아동센터는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B형’ 참여기관 중 하나다.

정원 35명에 긴급돌봄 5명을 더한 40명이 이용 중이며, 기초수급자 가정 아동부터 한부모·다문화·장애 아동까지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오후 8시부터 9시 사이, 아이들은 피아노, 우쿨렐레 등 각자 원하는 악기를 배운다.

우쿨렐레를 배우는 아동들 (사진=서울지역아동센터)
야간연장돌봄에 참여한 서울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모여서 문제집을 풀고 있다. (사진=서울지역아동센터)

9시가 넘으면 학습 시간이다. 한글이 부족한 아이는 문해력 교재를, 영어가 약한 아이는 단어 카드를 펼친다.

자기 학습이 끝나면 자유시간이다. 다만 휴대전화는 사용할 수 없다.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모습은 여느 가정의 저녁 풍경과 다르지 않다.

◆ “아이의 ‘시간’까지 돌보고 싶었어요”

“원래 야간연장돌봄 사업의 취지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주는 데 있어요. 그런데 저는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냈어요.”

아동교육 경력이 40년을 훌쩍 넘는 박혜신 센터장(65)은 늦은 밤까지 센터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님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줬다면, 그냥 아이를 혼자 두지는 않았을 거예요. 분명 공부도 봐주고, 핸드폰만 하지 않게도 했겠죠. 그런데 일을 하거나, 급한 사정이 생겨서 그걸 못 해주시잖아요. 그래서 센터에서는 제가 부모님처럼 아이들의 ‘시간’까지 돌봐주고 싶은 거예요.”

새단장한 휴식공간에서 K-POP 댄스를 연습하는 아이들의 모습 (사진=서울지역아동센터)

인력 운영의 어려움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구조적으로 인력 충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밤 12시까지 센터를 홀로 지키는 것도 박 센터장 자신이었다.

그러면서도 “최근에 청년 복지인력 신청이 가능해졌다는 지침이 내려와 매우 반갑다”고 말했다. 또 KB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아이들의 휴식 공간을 새단장할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벽에 새로 설치된 커다란 거울, 푹신한 빈백 소파가 그 흔적이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K-POP 댄스를 연습하기에도 딱 맞는 공간이 됐다.

◆ “늦은 밤에도 마음 놓여요”…야간돌봄이 바꾼 엄마의 퇴근길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던 미자 양은 “밤 늦게까지 센터에 있으면 집에 가고 싶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집보다 덜 무서워서 좋아요.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피아노 연습도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집에서 혼자 핸드폰 하는 것보다 여기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게 훨씬 좋아요.”

미자 양의 어머니 최영매(52) 씨는 면목동의 한 식당에서 일한다.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날이 많다. 야간연장돌봄을 이용하면서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늦은 시간에도 조급하지 않게 마음 놓고 퇴근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아이도 많이 좋아하고, 성격도 밝아졌어요. 사진전, 합창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여러 경험을 쌓게 해주시는 것도 감사해요. 감사하다는 말 외에 더 바라는 건 없어요.”

야간 연장돌봄을 이용하는 김미자(12) 양이 박혜신 센터장과 함께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정책브리핑)
◆ 돌봄의 ‘빈틈’ 메우는 야간연장돌봄…안정적 운영 기반 과제로 

사업이 시작된지 넉 달이 지났다. 올해 1~2월 두 달간 밤 8시 이후 이용 아동 수는 누적 4만 700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1273명의 아동이 돌봄 공백을 메웠다.

기존 주간 돌봄 이용자가 야간까지 연장한 경우가 97.8%(4만 6068명)를 차지했고, 긴급 상황에서 새롭게 이용한 사례도 1016명에 달해 제도의 필요성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사업이 뿌리내리기 위한 숙제도 남았다.

시설 환경 개선과 함께 안정적인 인력 확충, 운영비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밤 10시 30분, 미자 양의 어머니가 센터 문을 열었다.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책을 읽던 미자가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어두운 골목을 나서는 모녀의 뒷모습 위로, 건물 2층의 불빛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켜져 있었다.

정책브리핑 김두리

☞ 전국 야간 연장돌봄 운영 시설 목록(아동권리보장원)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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